“이 개그맨들은 왜 안보이는걸까?” 정말 대단했던 코미디언들의 갑자기 사라진 안타까운 사연과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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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학당은 1991년부터 <한바탕 웃음으로>에서 2년 반 동안 방영됐던 코너였는데요.

당시에 정말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데요. 30년이 지난 개그맨들의 근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서현선은 고 서영춘의 딸이자 개그맨 서동균의 누나로 알려져 있는데요.

원조 미녀개그우먼으로 1190년 KBS 6기 공채 개그맨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봉숭아학당>에서 오서방(오재미)의 행동에 태클을 거는 간난이 역할을 맡으면서 코미디 대상에서 신인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코미디 연기상을 수상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죠.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활동을 중단했고, 2011년에 경호원과 결혼한 이후로는 근황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80년 TBC 개그 콘테스트 은상을 수상하며 방송계에 데뷔한 김형곤은 ‘공포의 삼겹살’로 불리며 80~9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는데요.

봉숭아학당에서는 1대 선생님으로 출연했습니다.

<웃는날 좋은날><유머 1번지> 등에서 시사 개그를 선보였던 그는 “잘돼야~ 될 텐데”의 유행어를 만들었죠.

1999년도에는 정치에 입문해 2000년에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낙선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6년에 안타깝게도 급성 심근경색으로 향년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개그맨 최초로 카네기홀 공연을 앞두고 있던 터라 아쉬움은 더했습니다.

이희구는 KBS 5기 공채 코미디언으로 봉숭아학당에서 언년이로 출연해 오서방과 옥신각신하는 역할로 활동했습니다.

코미디 무대를 떠난 뒤 한동안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상담실장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연기자로 변신해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에 자주 모습을 보였죠.

아직 미혼으로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만나는 남자들이 자신을 다 보험으로 생각했고 그런 부분을 조심하다 보니 결혼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네요.

이후 예능 <집밥의 여왕><이것은 실하다><기막힌 이야기 실제 상황> 등에 출연했습니다.

양원경은 1991년 KBS 대학 개그제에서 김용만과 콤비로 출전해 대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그덕에 최고의 인기 코너였던 <봉숭아학당>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코미디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 다수에서 활약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코미디계에서의 똥군기와 좋지 않은 가정사를 비롯한 인간적인 논란들이 상당히 많이 알려지면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죠.

이후 하는 사업마다 잘 되지 않았고, 2019년에도 베트남에서 사업을 했으나 금세 접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는 <동치미>에서 근황을 밝혔는데, 불규칙한 식습관 및 취침으로 인해 당뇨를 앓게 되었다고 하네요. 2022년 이후로는 근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한국은 1984년 K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뒤 <유머 1번지>에서 맹활약했는데요.

<동작 그만>을 시작으로 김미화와 <쓰리랑 부부>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뒤 <쇼 비디오자키><코미디 세상만사><봉숭아 학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한 결과, 1990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코미디언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1988년에 결혼했으며, 프로축구 선수 출신인 아들이 한 명 있는데요.

현재는 손주도 있는 할아버지가 되었으며, 가끔씩 예능에 출연해 근황을 알리고 있습니다.

오재미는 80~9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으며, 맹구와 함께 봉숭아학당의 간판 캐릭터였던 오서방을 담당하며 전성기에 올랐습니다.

개그맨을 하면서 최고의 인기도 누리고 수입도 많았지만, 점점 코미디의 인기가 식으며 대인기피증까지 걸렸다고 하죠.

하지만 잘 극복한 후 2007년부터 KBS 희극인극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고, 2013년에는 싱글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89년 4살 연하와 결혼해서 아들 두 명을 뒀으나 결혼 9년 만인 1998년에 이혼했습니다.

2019년 송도에서 가족들과 함께 갈비찜 전문 음식점을 개업했다가 폐업했으며, 현재는 예전 오서방 분장을 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창훈은 1975년 극단에 입단하며 연극 배우로 입문했습니다.

이후 1991년부터 <봉숭아학당>에서 맹구라는 캐릭터로 출연해 어마어마한 인기와 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돌연 1999년 모친의 병간호를 위해 모든 활동을 중단했으며, 2005년에 들어서야 연극 무대로 돌아와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마당놀이나 공연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며 맹구 이미지 탈피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중 55살이 되던 2009년에 폐암선고를 받았고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수술후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미혼이며 현재는 연극 무대에도 서고 봉사도 많이 다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