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깎아내리거나 틀어지는 건…” 오래된 친구라도 이런 원치 않는 감정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You are currently viewing “자꾸 깎아내리거나 틀어지는 건…” 오래된 친구라도 이런 원치 않는 감정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갑자기 친구가 낯설게 보일 때 오랜 우정이 삐걱거릴 때 우리는 이 감정을 알아야 합니다.

“질투”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사람이 비슷한 삶의 조건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정의 최초 단계에서는 동질성이 중요하죠. 그러나 그 동질성이 질투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종종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사람입니다. 가까이서 나의 그림자를 비추는 존재죠.

예를 들어 인기가 많고 외향적인 친구를 질투한다면 인간관계가 좁고 내향적이라는 사실에 그림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면 친구를 은근히 깎아내릴 수도 있습니다.

혹시 “나는 질투나 하는 속 좁은 사람이 아니야” 라고 생각한다면 ‘질투는 나쁜 것’이라는 도덕관념이 너무 강해서 그 감정을 억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부인하면 뒤틀린 감정으로 발현됩니다.

예를 들어 워킹맘은 전업 주부에게서 모성의 그림자를, 전업 주부는 워킹맘에게서 성취의 그림자를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살지 못한 삶을 사는 상대를 보며 질투를 느끼지만 그 감정을 강하게 억압하면 상대를 은근히 폄훼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혹은 그 감정이 내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친구를 위한 걱정으로 포장하게 되죠.

질투는 실제로 내가 더 못나서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나의 다양한 인격적 측면을 알지 못하고 한 가지 모습으로만 살아갈 때 생깁니다.

나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메타인지를 갖는다

‘나는 한심해’라는 생각과 ‘나는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한심해’라고 생각할 때 나는 그저 한심한 인간이 됩니다.

반면 ‘나는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면 나는 한심해는 그저 나의 그릇에 담긴 수많은 생각 중 하나로 분리됩니다.

어떤 때는 한심하지만 어떤 때는 즐거운 날을 연결 지으면 입체적인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는 내 인생의 독자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독자이기도 하다’라는 생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인생을 살면 순간 순간 격렬한 감정과 생각을 경험하고 그때마다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휩쓸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주인공이 겪는 사건이 큰 이야기의 일부임을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보다는 훨씬 더 넓은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죠.

내 인생의 독자가 되면 지금 이 고통과 슬픔, 쓰린 감정도 이야기의 한 조각일 뿐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다

‘쟤는 금수저로 태어나서 머리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고 인생 참 편하겠네’

때론 정말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 인생 편하겠다’라는 말은 섣부른 추측입니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그림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삶의 기로에서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림자는 자신이 살지 못한 삶에서 생기기 때문이죠.

‘저 사람은 저렇게 잘 났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보다는 ‘내가 저 사람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진실에 가까운 반응입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볼 때 비로소 상처받는 관계에서 벗어나 더욱 단단한 내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