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창시절 싸움으로도 꽤 이름을 날리며 지역에서 유명해지게 되고 조직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게 됩니다.
바로 김종국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김종국은 ‘조직에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라 생각해 이를 거절한 뒤 이참에 아예 방황을 끊고 제대로 살아보기로 결심하죠.
공부는 아예 담을 쌓았던 김종국은 자신이 뭘 잘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남들보다 높은 톤의 타고난 미성으로 노래를 꽤 잘 불렀던 그는 가수에 도전해 보기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 후 6개월 동안 미친 듯이 준비한 그는 ‘터보’라는 그룹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고 <나 어릴 적 꿈><검은 고양이> 등 데뷔곡이 바로 히트를 치면서 엄청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숨어 있었는데요.
당시 터보의 소속사는 조폭 집단에 의해 비상식적으로 관리되고 있었고 스케줄을 하루에 17개씩이나 돌리며 이로인해 하루 만에 국내선 비행기를 5번이나 타야 하는 상황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죠.
당연히 소속사는 수익 대부분을 부당하게 갈취하였고 사소한 실수라도 있으면 지하실로 끌고 가 가죽 벨트, 빠다, 라이터 등 살벌한 고문이 이어졌다고 하죠.
당시 김종국은 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허리가 완전히 혹사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법적 계약이 종료될 때가 되어서야 빠져나온 김종국은 솔로 활동으로 다시 가수 인생을 시작하려 했는데요.
전 소속사에서 가요계의 작곡가들과 방송계에 미리 손을 써둬 김종국이 곡을 받을 수도, 방송에 출연할 수도 없게 방해를 하며 심지어 협박까지 했다고 합니다.
김종국은 이런 방해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으며 독기를 품고 스스로 프로듀싱까지 배워가며 솔로 1집을 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처참히 망해버렸고 정신력이 강했던 김종국에게도 엄청난 슬럼프가 찾아와 모든 걸 포기하고 활동을 중단하면서 더 이상 방송에서 그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김종국은 갑자기 2집 <한 남자>로 컴백을 했는데요.
이때 그의 몸은 엄청 좋아져 있었고 곡도 너무 좋아 엄청난 흥행을 맞이하며 진짜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알고 보니 그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 외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그걸 꾸준히 하며 일상이 회복되었다고 하는데요.
그것은 바로 운동이었죠. 그는 자신의 일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주어진 일을 할 땐 열심히 하고 남는 시간에는 꼭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삶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이라면 꼭 이 얘기를 해 주거든.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거 한 가지는 꼭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되게 오래 갈 수 있어 건강하게…”
“저도 여유 시간이 많이 없는 편이기는 하거든요. 그래도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핑계는 최소한 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김종국은 터보로 활동할 때 고통받고 힘들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 모두가 나라는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곡들도 남아 있는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그때 인생이나 음악적으로 많은 부분들을 배웠기 때문에 지금 잘 될 수 있었고 그 시기를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죠.
그는 정말 불행한 일을 겪어도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고 그것을 찾는 능력을 키우는 게 인생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부정적인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작은 부분이라도 긍정적인 걸 찾아서 그걸 그냥 좋은 일로 생각하는 습관을 계속 했거든. 그런데 그게 도움이 너무 많이 돼.”
“내가 손을 다쳤어. 그러면 사람들은 운동 어떻게 하나? 근데 아니야. 손을 다쳤으니까 그동안 싫어했던 다리 운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잖아.”
“내가 뭘 먹고 싶을 때 밥값을 걱정하지 않는 그것만으로 저는 너무 행복해요”
그에게서 일과 좋아하는 것의 균형을 맞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불행 속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는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것의 필요성 등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