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 메기병장 개그맨 이상운, 고비만 4번을 넘기며 살아온 안타까운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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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유머 1번지의 인기 코너인 ‘동작 그만’ 을 비롯해서 수많은 방송에서 큰 웃음을 주었던 코미디언 ‘메기 이상훈’ 당시에 정말 큰 인기를 누리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송에서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없게 되었는데요. 보통의 연예인들이 그러듯이 TV에서 안 보여도 나름대로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얼마 전 방송에 나와 안타까운 근황을 전했습니다.

그동안 대장암 등 여러 질환으로 죽을 고비만 4번을 넘기며 몸이 성한 곳이 없이 건강 상태가 최악이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1991년 이상훈은 아내 송모 씨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내의 직업은 디자이너였다고 하는데요. 첫 눈에 반해 만난 지 7개월 만에 바로 결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과거 아침 방송을 통해 미모의 아내를 공개하기도 하였는데요. 당시 다정한 잉꼬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자녀의 교육에 욕심이 있었던 부부는 아들과 딸을 미국에 유학을 보내게 됩니다.

차녀가 아직 어렸기에 어머니까지 해서 세 가족이 미국으로 떠나게 된 것으로 아버지 이상훈은 홀로 국내에 남아 미국에서의 가족들의 생활비를 보내주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러기 아빠가 되게 된 것인데요.

미국에서 지내는 세 가족의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까지 매달 보내야 하는 금액은 만만치 않은 상당한 액수였습니다.

그래도 전성기 시절의 메기 이상훈이라면 어떻게 감당이 되었을 텐데, 이때는 전성기가 이미 훌쩍 지난 상태로 방송국에서 예전처럼 잘 찾아주지 않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기에 스크린 골프장 사업을 하기도 하고 방송 리포터, 강의 등을 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돈이 부족했고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했기에 결코 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7년이 넘도록 혼자 국내에 남아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정신적, 육체적 한계가 다가왔는지 과거 방송에 나와 지금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라고 7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 현실을 공개하였는데요.

지금 말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재정적으로나 건강에 있어서나 최악의 상태라며 현재 통장의 잔고가 4,800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여 그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짐작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상태이지만 꿈이 있어서 버틸 수 있습니다. 요즘 긍정의 힘이라는 강의를 하러 다니는데 4,800 원 밖에 남지 않은 제 통장을 보여주며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내가 왜 지금 이런 고초를 겪고 있는지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예전엔 통장에 돈이 많으면 쓸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잔고가 알려진 이후에는 돈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없다고 좌절하면 안 됩니다. 마음을 비우면 또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어요.” 라며 강의를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긍정의 힘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며 말하길 “제 통장의 잔고는 항상 4,800원입니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딱 잘라 ‘송금’이라는 두 글자죠. 송금을 한 후 걸려오는 아내와 아이들의 전화에서 힘을 얻습니다.

아이들에게 고마워요. 열심히 할게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이 고생을 하며 돈을 버는 이유는 오직 아내와 자식들 때문이라며 가족에 대한 진한 애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오직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았지만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육체적, 정신적으로 분명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홀로 일을 견뎌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7년간 기러기 생활을 하는 동안 아들을 단 3번 밖에 만나지 못했을 정도로 서로 간의 왕래가 뜸했다고 합니다.

가정이 있는 중년 남자가 홀로 4,800원으로 청승맞게 살면서 가족의 얼굴을 본 게 고작 3번 정도라니 정신과 육체가 온전히 버티지 못하는 게 당연할 것입니다. 결국 그의 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 대수술을 4번이나 받아야 했습니다.

대장암 수술과 담낭이 터져 패혈증 수술을 하는가 하면 목 디스크로 마비 증상이었고 거기에 수술 후유증으로 성대까지 다치게 되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는 등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절망적인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것도 홀로 쓸쓸히 말이죠.

이때 당시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 누워 있는데 아직 마취에서 안 깬 줄 알았는지 의료진들이 들어와 이야기를 하는데 “으이그. 이 바보 같은 사람. 돈 벌어서 애들 유학 보내면 뭐 해. 정작 수술할 땐 가족 아무도 없는데” 라고 이상훈 씨의 흉을 보았다고 합니다.

눈을 감고 그 소리를 그대로 듣고 있었던 이상훈은 마냥 눈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혼자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몸과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곧이어 경제 위기로 진행하던 사업도 접게 되었다고 하니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시련입니다.

이상훈 부부는 지난 2013년 결혼 22년 만에 이혼 소송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상훈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건강 악화, 기나긴 기러기 아빠의 삶,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그의 측근은 전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상훈은 몹시 힘들어 했으며 그의 아내도 미국에서 나름대로의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한 이상훈은 지금까지 홀로 아들과 딸을 키워왔다고 하는데요.

현재 자식들은 모두 독립을 한 상태이며 전 아내는 여전히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7년간 홀로 기러기 생활을 할 때 이상훈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가족이 있는 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실에서는 못 가고 잠들기 전에 가족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꿈으로 연결돼요. 아들이 축구를 좋아하니까 같이 운동장을 뛰기도 하죠. 50대 중반이 되면 남자들은 큰 욕심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주변을 정리하고 가다듬을까 생각해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다인 것 같아요.”

그야말로 자신의 가족 특히,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자녀들은 바르게 잘 자라주었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길 “둘 다 잘 커줬다. 자기 밥벌이도 다 하고, 나는 행복한 부모 중에 속한다. 애들이 굉장히 큰 기업체에 들어가 일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있다” 라며 자식들을 대견스러워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상훈의 아들은 혼자가 된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인생도 있고 앞으로 많이 남았는데, 재혼을 하시면 좋을 것 같다” 라고 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님의 이혼을 이해하게 되었다며 어느덧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최근엔 간간히 방송 활동을 비롯해 강사 또는 사업에 열심히 하는 이상훈.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경기도 용인과 제주를 오가며 관광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의젓한 자식들과 함께 여유 있고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