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극단적인 생각을…바다에 빠질지, 고층에서 뛰어내릴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던 백종원의 안타까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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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은 1966년 충남 예산군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증조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장사꾼으로서의 재능과 꿈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죠.

그는 연세대학교를 입학한 뒤 사업을 하기엔 이른 나이인 1학년 때부터 호프집을 인수해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성공의 맛을 조금씩 보기 시작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육군 간부식당 관리 장교로 군 생활을 마치게 되고 1993년 전역 후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는 다시 요식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 요식업으로 실력을 쌓아가고 있던 백종원의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사업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목조 주택 사업이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여기에 홀린 듯이 투자하게 되는데 이 결정으로 인해 그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997년 IMF 사태로 투자하던 목조 주택 사업은 물거품을 넘어 17억의 빚이라는 어마어마한 책임을 백종원에게 안겨다 주었는데 지금 시대에 17억도 아니고 24년 전에 17억이라니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빚을 마주하게 된 젊은 나이에 백종원은 인생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에 가까운 해외인 홍콩으로 건너가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다에 빠질지, 고층에서 뛰어내릴지 고민하던 그는 홍콩에서 무심코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갑자기 그 신기한 맛을 통해 사업 아이템이 떠올라 당장 내일부터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1998년 한신포차, 2005년 새마을 식당, 2006년 빽다방과 홍콩 반점 등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대박 브랜드들을 성공하고 유지시켜 17억의 빚을 조금씩 청산하고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런 최악의 실연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기회 삼아 더욱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인생에 대한 몇 가지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 그는 사람이 실패했을 때 어디로 초점을 두는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에 따라 결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신이 있다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실연이든 부여할 수 있지만 그 실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만큼은 그 누구도 정해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백종원은 큰 빛을 갚아나갈 희망과 원동력을 ‘내가 그래도 조금씩 이자를 감당하기 시작한다’는 그 작은 사실에서부터 얻었다고 합니다.

절망 대신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도 그곳에 시야를 두고 초점을 맞추기를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두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초심을 잃지 말고 서두르거나 욕심을 내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그는 강조합니다.

그는 그때의 실패를 교훈 삼아 맛있는 음식을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가치를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은 채 간직하고 모든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500만 채널 ‘백종원의 요리비책’이 사실 적자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보다 더 좋은 퀄리티로 실현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느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적자라고 합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사업가인 그가 당장의 수익보다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에 훨씬 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적자를 통한 가치실현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자신에게 더욱 큰 성공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백종원은 확신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